저는 작품의 영적인 면은 여러 곳에서 표현된다고 생각합니다. 말들, 특히 제가 잘 알고 있는 경주용 말들, 은 어린 여자 아이처럼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존재중에 하나라고 생각 합니다. 감성이 풍부하며 세속적이지 않은 존재들 이지요... 계속
INTERVIEW
인터뷰
고스트 페인터
전 세계에 있는 화실에서 이 예술가는 아마도 할 말이 굉장히 많고 그 말을 하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는 영혼들을 불러낸다.
미국 예술가인 윈저 조 이니스가 (그는 국제주의자라고 불리는 것을 더 선호하지만) 20년만에 작년에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그가 찾아야 했던 첫번째 것들 중 하나는 귀신 들린 집이었다. 그는 수 년 전에 한남동의 그의 화실에 정기적으로 출석하는 영혼들이 여럿 있었었다. 거기서 그는 이태원으로 가는 길목 깊은 곳에 잘 숨겨진 개인 주택2층에 살면서 그림을 그렸다. 그가 최근에 그 집이 아직도 있는지 보러 갔을 때 그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 자리에는 한국의 거대한 고층 아파트가 우뚝 솟아나 있었다.
전 세계에 걸쳐 살고, 그림을 그리고, 전시회를 하며 여러 권의 책을 쓴 여행자로서 그의 화실은 그의 성소이자 그의 사원, 현대 사회로부터의 도피처, 그리고 종종 그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부터의 도피처이다. 그의 작업실에서 그는 혼자 있을 수 있는 만큼 혼자 있는다. 그는 혼자 있을 수 있는 것을 보장하기 위해 친구들, 이웃들, 동료들, 그리고 그 외에 미리 연락을 하지 않고 아무때나 찾아 올 수 있는 사람들로부터 방해받지 않게 하기 위해 화실의 위치를 비밀에 붙인다.
그리고 전화기나 팩스도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을 것이다. 윈저에게는 조그마한 방해라도 그 날 하루 전체의 작업을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최악의 경우는 그와 대화를 나누고 있던 영혼이 몇 주 동안이나 사라질 수도 있다.
많은 예술가들처럼, 영혼의 세계는 그의 작업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예술의 실습은 한 예술가가 자신의 창조력을 불러 낼 수 있는 힘을 주는 명상적 상태라고 그는 말한다. 하지만 윈저는 그보다 조금 더 나아간다. 그는 그림이 붓을 들고 있는 사람과는 거의 아무 상관이 없다고 믿는다. 화가는 다른 사람들이 말할 수 있는 도구에 불과할 뿐이다. 여기에 바로 그의 영혼들이 등장한다.
19세기 미술 역사의 학생으로서 그는 그가 깊이 연구하는 화가들 중에서 그의 영혼들을 찾는다. 오래 전에 죽은 이들이 그에게 이야기 한다고 그는 말한다. 그들은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그를 이끌어 간다. 그들의 조언이 육성으로 오는 경우가 매우 드물고 칭찬해 주는 경우가 거의 절대로 없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들은 대 화가들이다. 그들은 살아있는 어느 누구보다도 그림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다,” 라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그것을 아는 것은 오늘날의 예술의 기준에 대해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좀 분명하게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들은 현대 미술가들에 대한 인내심이 별로 없다.”
윈저에 따르면 그들은 기강이 엄격하게 잡힌 그룹이라고 한다. 그들은 진짜 화가들로 매우 열심히 일했던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들은 열심히 술도 마시고 열심히 놀기도 했지만 작업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인상주의 화가들을 예로 든다. “그들이 앵그르와 그의 살롱 화가들로부터 떨어져 나갔을 때 그들은 자신들의 경력을 담보로 했다. 그들은 다시는 그림을 팔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것, 혹은 놀림을 받지 않으면서 길을 걸을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 그렇게 했다. 반항자들로 그들은 자신만의 세상을 조각해 내야 했다. 구매자를 세워나가야 했다. 각자가 혼자서.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자신들의 혁명에 헌신했다. 그들은 예술을 진지하게 대했다. 그것을 연구했다. 그들의 역사를 알았다.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알았다. 페인트 칠하는 방법을 알았다. 그것은 그들의 언어였다. 당신은 예술가의 왕위를 노리는 오늘날의 현학자들에게 왜 그들이 인내심이 없는지 여전히 의아한가?”
그래서, 영혼들이 그에게 이야기를 하지만 그것은 정당한 논쟁에 더 가깝다고 그는 말한다. 거의 대체로 모든 이야기는 그에게 유리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윈저는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그가 있었던 곳이라면 어디든 그들의 지혜를 공유했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그림을 파괴해도 (그들은 이렇게 하기로 유명하다), 그는 그 배움의 경험에 매우 감사하다고 한다. 그때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었지만 말이다.
해외의 다양한 그의 화실로 말할 것 같으면, 윈저는 신비로운 도시 이스탄불, 비둘기들 사이에서 지냈던 북 키프로스의 고대 어촌에 있는 다락방, 멕시코의 정글, 유행을 이끌어가는 화려한 도시 리스본,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탱고 클럽들이 있는 옛 동네, 쟌 다르크의 그늘 아래 있는 오를레앙의 성, 도쿄, 런던, 캐나다의 도시 빅토리아의 외진 지역, 그리고 미국의 남부, 북부, 동부, 그리고 서부에서 그가 자신의 집이라고 불렀던 여러 곳에서 그는 영혼에 홀렸었다.
하지만 그는 인생을 통틀어, 그의 70 평생 대부분을 그에게 있어 낯선 나라들에서 살았다. 그의 말을 빌자면, 그는 그러한 곳에서 자신의 것과 같은 것이 아닌 삶, 문화, 그리고 역사를 배우는 학생으로서 가장 잘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어떤 때는 그의 조국이 그에게 외국처럼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미국에 문화가 존재하긴 한다고 그가 인정하면서도 그 문화는 계속적으로 연예인들과 뉴스앵커들에 의해 정의되어져 가는 것 같다고 한다. 그들이 ‘쇼팽’을 제대로 발음 할 수 있건 못하건 상관없이 말이다.
당연히 윈저는 자신의 화실이 어디 있는지 말을 해주지 않기 때문에 그의 대화들을 입증하지는 못한다. 그는 자신이 누구와 대화하는지도 말해주지 않는다. 그는 그것이 특권이 주어진 정보라고 한다. 뉴욕에 기반을 두고 있는 미국의 으뜸가는 미술 비평가인 도날드 커스핏 박사가 그에 대해 쓴 에세이를 보고서 힌트를 얻을 수 있긴 했다. 그 에세이는 다가오는 몇 주 뒤에 서울에서 출간될 그의 모노그래프의 서문으로 등장한다. 그 책은 [INNOCENCE ABROAD, The Girls of Coatepec](도서출판 멜론 출판)인데 그것은 한국, 일본, 미국, 영국, 프랑스, 그리고 독일에 (아마 이 순서대로) 배포될 예정이다.
거기서 커스핏은 이 예술가에게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믿는 이들에 대해 언급한다. 그들 중에는 고야, 휘슬러, 마네, 코로, 부궤로, 그리고 알마 타데마가 있다. 짐작컨대 그가 토론에서 지게 된 영혼들 중 몇 명일 것이다. 그의 그림을 두고 판단했을 때, 그는 진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이긴 것 같다.
인터뷰 /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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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와 사랑 나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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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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