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작품의 영적인 면은 여러 곳에서 표현된다고 생각합니다. 말들, 특히 제가 잘 알고 있는 경주용 말들, 은 어린 여자 아이처럼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존재중에 하나라고 생각 합니다. 감성이 풍부하며 세속적이지 않은 존재들 이지요... 계속  

 

 

 

 

 

 

 

 

 

 

INTERVIEW
인터뷰

 

여행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나는 문득 기억이 났다. 그날 아침에 그 편지가 리스본에 있는 나의 예전 집주소로 보내졌다는 것만 확인하고 나의 카메라 가방 안에 찔러 넣었던 것을. 나는 거의 2년 전에 그 곳을 떴다. 한국에서 출간할 나의 모노그래프 [Innocenc Abroad, The Girls of Coatepec]과 관련하여 도쿄 주재 멕시코 대사관에서 있을 전시회를 준비하러 가는 길이었다.

나는 봉투를 봤다. 힘겨운 여행을 견뎌낸 티가 났다. 안에는 영어로 된 1장 짜리 편지가 있었다. 내가 모르는 사람이 서명했다. 누가 나의 집 문 아래로 넣었는지 알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다시 봉투를 봤다. 나는 가능성들을 계산하기 시작했는데 그때 작은 기적이 습관적으로 나타나는 한국에 내가 다시 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기적’은 조금 강한 표현이다. 이 설명 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이유는 이 곳에 있는 사람들의 본질과 나의 한국어 어휘가 약 10단어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는 슬픈 사실에 원인이 있다. 의사소통을 할 능력이 되지 않는 것 때문에 친구들은 내가 어느 때이건 공중에 떠서 사라질 수 있는 영혼을 대하는 것처럼 나를 우회하여 얘기한다. 저녁식사나 회의 때 나는 그 곳에 있지만 또한 그 곳에 있지 않다. 내가 주제의 중심이 될 때에도 귀먹은 노망난 할머니 취급을 받는다. ‘

나는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책을 끝내려고 아주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여기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나를 위해 처리가 되는지를 잊고 있었다. 나를 대신해서 해주지 않았으면 하는 일들도 나를 위해 누군가 처리하는 곳이 이곳이다. 그것이 필요하다는 것 조차 알지 못했던 것도 누군가 해준다. 그 결과로 어떤 것들이 마술처럼 나타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아까 말했듯이, 이 곳은 작은 기적의 장소이다. 나는 그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편지는 아주 아름답게 쓰여졌다. 그것은 경주 외곽의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세상을 등진 영적 지도자가 쓴 것이었다. 그녀는 오랫동안 소식을 모르고 지냈던 나의 동생이자 그녀의 친구에 대해서 얘기했는데, 그가 어찌 어찌하여 나의 리스본 주소를 알아 냈던 것이다. 그는 20년간 나를 찾고 있었다고 한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내 동생이 아니었다. 내가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간에 그는 나의 ‘도사님’이었다. 도쿄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우리가 처음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를 떠올렸다. 80년대 초반에 나는 코리안 타임즈에 글을 기고 했었다. 나의 한 친구가 그 도사에게 전화를 해서 내가 썼던 칼럼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녀는 그를 수년간 알고 지냈었고 그가 관심 있어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칼럼은 내가 남대문의 불빛 환하고 생동감 넘치는 거리를 혼자 걸었던 어떤 밤을 묘사한 글이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나는 그 곳의 리듬을 즐기고 있었다. 손님을 끌어 모으려는 상인들의 고동치는 외침, 그들의 얼굴을 비추는 촛불들… 군중은 강과 같았고 나는 그것과 함께 떠다니고 있었다. 어두워진 상점 창문을 지나가면서 군중의 이미지가 나에게 다시 반사되어 보였다. 빛이 반짝이면서, 전진하듯이. 처음에 나 자신의 모습을 알아채지 못하고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키가 큰 이상한 남자가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은 것에 주목하였다. 나는 창문에서 나 자신을 외부인으로 보았고 그 반사된 모습이 충격적이었다. 나는 군중의 일부라고 믿었었는데 사실은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군중으로부터 분리된 사람이었다. 나는 내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는 눈으로 나를 보게 되었다. 나는 내가 한국인이 아니라는 것을 잊었었다. 

“…그 어두워진 창문을 통해 나를 물끄러미 다시 바라보는 그 남자는,” 나는 칼럼에 기록했다, “분명히 서양인이었다; 미국인; 어쩌면 그 이름과 함께 따라 오는 모든 좋고 나쁜 것들이었다. 그는 바로 거기 있었다. 그의 흐릿한 얼굴이 군중 위를 떠돌았고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있었으며, 길고 곧게 뻗은 코에, 턱에 수염이 나고 키는 불리하고 어색한 모양새를 연출했다. 

“이 남자, 그는 분명히 혼자였다. 그는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하고 있듯이 얘기하고 있지도, 웃고 있지도, 누군가를 부르거나 누군가에게 소리치거나 누군가와 팔짱 끼고 걷고 있지도 않았다. 그의 크고 어색한 얼굴은 너무나 길고 너무나 침울해 보였다. 그 얼굴은 군중 위 족히 1피트나 2피트 정도 더 높은 곳에서 흔들거렸다. 진지하고 이상하게 코믹해 보였다. 나는 한국인들이 보듯이 그를 봤다.

“나는 그 안에서 유머를 봤다: 자신의 나라와 너무도 다르고 묘한 나라에서 손님 속에 섞이려고 애쓰는 한 남자의 대단하고 서투른 선의를 말이다. 그 안에서 나는 아이들이 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미소를 짓는 이유를 보았다. 아이들이 ‘아저씨’라고 부르는 이 몸집이 크고 코믹한 남자 말이다. 이 남자에게서 나는 오래 되지 않은 과거에 그들이 이해하지도 않았고 이해할 수도 없었던 전쟁에서 싸우려고 이 땅에 온, 그와 무척 닮았던 군복 차림의 남자들을 보았다.

“나는 또한 창문 속의 이 남자가 취하는 위협을 보았다. 어떤 보이지 않는 힘으로 그가 한국과 한국의 삶을 흡수하고 그 자신과 같은 문화, 기준, 그리고 가치들로 한국을 대체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미심쩍은 마음이 들게 하였다. 나는 하드 락, 디스코, 서양 문구가 쓰여진 티셔츠를 믿을 정도로 어리석거나 어린 사람들, 그리고 그의 캐주얼하고 무심한 방식을 흉내내기로 작정한 사람들을 꾀어내는 사악한 피리부는 사나이로 그를 보았다.

“그리고 나는 어두워진 창문 속의 그 남자, 그가 왜 여기에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너무도 조용하고, 진짜 코믹한 이 남자가 혼자 걸어가면서 무엇에 대해 생각하는지 알고 싶었다.”

도사와 나는 신문 칼럼이 출간되고 나서 얼마 뒤에 바로 처음으로 만났다. 그 날은 무더운 8월의 어느 날이었다. 그는 경주에서 느린 기차를 타고 올라왔다. 내 친구와 내가 커피숍 안으로 걸어 들어갔을 때 그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 그는 전통 모시 의상을 입고 있었다. 요즘 보기 드문 복장이었는데 혹여 보더라도 시골의 할아버지들한테서나 볼 수 있는 차림이었다. 그의 머리카락은 검은 색이었고 깔끔하게 이발이 되어 있었다. 머리카락 밑에는 소년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는 영적 지도자 같이 생기지 않았다. 내가 봐 왔던 영적 지도자들은 훨씬 나이도 많고 머리를 삭발했으며 안으로 선회하고 먼 곳을 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소개를 한 후 그는 앉았고 손거울을 꺼내 자기 자신을 쳐다봤다. 그는 자기 자신을 꽤 오랜 시간 동안 보았고, 그 다음에는 자신의 커피를 봤으며, 그 다음에는 나를 봤다. 그는 미소를 짓고 커피를 마셨다. 다 마셨을 때 그는 그의 거울을 봤고 다시 나를 봤다. 이상하게도, 나를 쳐도 보는 그의 시선을 마주 할 수 없었다. 나는 그 역시 나를 보는 것을 어색해 한다는 것을 느꼈다. 왜냐하면 우리 둘 다 피난처로 우리의 친구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은밀하게 상대방을 평가할 수 있는 피난처 말이다. 그는 자주 그의 거울을 주목하였다. 그는 나의 친구에게 오랫동안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당혹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다시 그를 쳐다봤다. 그녀는 그가 나의 오른 손을 보기를 원한다고 말을 전달하면서 약간 겸연쩍은 듯한 모습을 보였다.

내가 손을 테이블 너머로 뻗었을 때, 그는 나의 손을 받고 이전에 자료가 없었던 버미어의 그림을 발견하여 흥분을 자제하려는 사람같이 나의 손을 열심히 연구했다. 그는 나의 친구를 쳐다봤다. 그녀는 쇼크 상태였다.

도사는 의자 뒤로 기대고 거울을 통해 자기 자신을 봤다. 나의 손을 돌려 받았을 때 나는 그것을 쳐다봤다. 전과 변함없이 똑같이 보였다.

그 후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나는 나중이 되어서나 내 손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는 그녀에게 내 손이 무엇을 나타내는지를 얘기해 줬었다. 자를 대고 그은 듯이 한 손금이 손바닥의 폭을 가로질러 똑바르게 갔다는 것이다. 그는 그녀에게 그 손금이 다른 손금과 어떤 지점에서 어떤 방식으로 교차하는지를 말해 줬었다.

나는 그 후로 다른 사람들의 손들을 살펴봤지만 내 것과 같은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또한 내 손바닥에 그렇게 똑바른 선이 있다는 것을 한번도 알아차리지 못했었다.

우리가 헤어지기 전에 그가 내 친구에게 남기고 갔던 메시지는 그가 나의 영적 가이드가 될 것이라는 말이었다. 내가 그런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든 그렇게 생각하지 않든 상관없이. 그는 한평생 그가 하고 싶은 대로, 혹은 무언가를 꼭 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을 가지는 대로 그렇게 하며 살았었기 때문에 그를 부인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보아하니 그는 나의 허락이 필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는 그의 말을 아주 잘 지켰다. 그의 훌륭한 부처 석상 앞에 서려고 산을 올라갔을 때 그는 공개 리셉션에 언제나 내 곁에 있었고 나는 그의 곁에 있었다.

면 스님의 도움으로 우리는 다시 만나 시간의 차이를 줄일 수 있었다. 나에게 하는 그의 말이나 내가 그에게 하는 말이 여전히 제한적이지만 우리 둘 중 누구도 침묵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때도 서로를 형님 동생이라 불렀고 지금도 그렇게 부른다. 그의 제자 중 몇 명은 그가 자신의 미국인 형님에 대해 얼마나 자주 얘기했었는지, 그리고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나를 찾았었는지에 대해 나에게 이야기 해줬다.

그는 여러 유명 대학에서 강의를 맡고 있는 뛰어난 동양 철학 교수이다. 최근, 어느날 오후에 우리는 경주 외곽에 있는 아름답게 우거진 숲길을 거닐었다.

우리가 그 동안 다른 길을 함께 여행했고 다시 만날 날을 기대했었지만, 내 생각에 우리 둘 중 누구도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의심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그의 삶과 발버둥 쳤던 것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스스로 고대 문서를 읽고 고대 언어를 쓸 수 있게 되기까지 독학으로 공부한 이야기와, 자신을 그렇게 하도록 만든 신비로운 사건들에 대해 듣게 되었다. 나는 그가 어떻게 한겨울에 산 꼭대기에 있는 눈더미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꼬박 하루를 명상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배웠고 그의 신앙이 어떻게 그 추위를 이겨내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결국 남대문 시장에서 밤에 어두워진 창문에 거울처럼 반사된 모습을 묘사한 나의 글이 왜 우리의 인연을 맺어줬는지 알게 되었다.

허영심이 그로 하여금 거울을 보게 만든 것이 아니었다. 내 생각에 그것은 그의 영적 상태를 제어하는 도구 같았다. 그가 그것에 대해 의식을 하든 하지 않든. 다른 사람들이 그를 보는 눈으로 자신을 볼 수 있게 허락해 주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그가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안심시키고 그가 더 이상 의사사통을 할 수 없는 다른 세계로 표류하지 않았다는 것을 재보증하는 것이다.

나는 내 작업실에 있는 거울에 얼마나 의존해 왔었는지 그에게 한번도 얘기한 적이 없다. 나는 작업하는 내내 그것을 사용한다. 진행 중인 한 작품의 반대 이미지는 그 그림을 새로 보는 것, 새로운 눈을 가지고 보는 것과 같다. 나는 나의 거울에서 반사되는 두 번째 이미지의 필요성을 도사를 만나고 나서 한 참 후에야 생각해 보았다. 예술가 역시 두개의 세계에서 작업 해야 한다. 그가 작업중인 그림은 그 자신과는 거의 관련이 없다. 그가 조금이라도 실력이 있다면, 그는 앞서 살다 간 망자들이 말을 할 수 있도록 매체가 되어주는 도구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것에 대해 한번도 논의를 해본 적이 없다. 만약 했다면, 우리는 어떤 언어를 사용해야 했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그가 이것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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